새로운 약속들(05~07)

6. 새로운 고난

세종특별자치시설치특별법의 입법 예고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법률이 정한 바 세종시는 충청남도에 속하지 않고 광역자치단체와 같은 지위를 지니며 산하에 자치구를 두지 않는다는 내용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렇듯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법적 지위와 관할구역 등의 규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세종시설치특별법 제정과 변경고시 확정은 한정 없이 지연되고 있었다.

국회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과 법적 지위, 관할구역, 출범시기 등에 관한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을 논의하는 동안에도 연기군민과 범충청권 시민사회단체는 원안사수를 주장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권에서도 한 목소리로 원안사수를 외치고 있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이 '세종특별자치시'로 확정된 이후 도시의 법적 지위, 행정구역 등을 설정하기 위한 전문연구기관의 검토가 시작되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정부직할의 광역자치단체로 두는 방안과 충청남도 관할의 기초단체, 정부직할의 지방행정기관으로 두는 방안,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를 겸한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었다.

충청남도에서는 충남 산하의 기초단체로 둘 것을 요구했고, 충청북도는 정부직할의 광역자치단체로 하자는 입장이었다.

한편, 연기군은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연기군이 통합시로 승격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지위 부여를 둘러싼 주장이 팽팽했다.

게다가 정부가 잔여지역을 연구용역 대상에서 제외하자 연기군의 우려는 더욱 커져갔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법적 지위와 행정구역 설정을 위한 연구용역 범위는 예정지역과 주변지역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연기군의 절반이 넘는 면적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편입되면 연기군은 초이니 지방자치단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연기군은 잔여지역이 반드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편입되어야 함을 강럭히 주장하고 나섰다.

또 일부에서는 연기군의 잔여지역이 공주, 대전, 청원, 천안으로 분산 편입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나왔다.

연기군이 지역 대부분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빼앗기고 나머지 지여마저도 공중분해될 것이라는 걱정에서 비롯된 전망이었다.

2007년 5월 21일, 정부는 향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의 밑그림을 내놓았다.

총 5조 부칙 5조로 구성된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충청남도에 속하지 않고, 광역자치단체와 같은 지위로서 산하에 자치구가 없는 특수한 형태다.

다시 말해 연기군과 공주시,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모두 9개면, 90개리가 통합되는 '세종특별자치시'는 경남 창원시 면적과 비슷한 297제곱킬로미터로, 기초자치단체 없이 읍•면•동으로 구성되는 단층제 구조였다.

연기군 전체를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던 연기군민은 거세게 반발했다.

입법 예고안에 따라 연기군이 전체 면적 중 52퍼센트를 내주고 인구도 8만 2,000여 명에서 3만여 명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편입된다면 연기 군세는 현격히 약화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연기군은 잔여지역인 조치원, 전의면, 동면, 소정면, 전동면 등 연기군 전체를 포함할 갓과 법적 지위도 특별시 대신 행정과 재정특례를 인정하는 충청남도 산하의 '도•농 복합형 특례시'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의 입법 예고기간을 6월 말까지 연기해 놓고 주민의 뜻을 수렴하는 과정을 요구했다.

2007년 5월 29일, 충청남도 시군의장협의회에서는 예정지역과 주변지역, 연기군 잔여지역을 포함하되 공주시와 청원군을 주변지역에서 제외하는 의견을 내놓았고, 5월 30일에 열린 토론회에서는 입법 예고안을 철회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6월 11일 정부에 제출한 의견은 지역별로 서로 달랐다.

공주시와 청원군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주변지역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행정구역 변경과 법적 지위는 공주시와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므로 법률('지방자치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공주시의회의 어견의 반영되거나 전체 주민의 투표로 결정해달라고 건의했다.

더불어 주변지역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하는 3만여 명의 주민진정서를 첨부했다.

연기군은 잔여지역까지 행정도시에 포함해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도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연기'로 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연기지역 전체면적 중 51.7퍼센트와 인구 36.2퍼센트가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편입되면 잔여지역만으로는 지방자치단체로서 존립자체가 어렵다는 게 주장의 근거였다.

충청북도의회는 본 회의를 열어 청원군의 강내면•부용면 지역의 세종특별자치시 편입추진과 관련한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희망지역만 편입한다는 의견을 확정했다.

이렇듯 행정도시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 속에서 6월 19일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를 중심으로 건설될 행정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 의결되었다.

연기군민들은 연기군과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통합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연기군 현안을 협의했다.

한편 연기군의회는 지난 23일부터 의회 본회의장에서 제146회 연기군의회 임시회 개회식을 열고 4일간의 회기에 들어갔다.

또한 연기군의회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연기군과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주변지역 관리방안을 수립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추진되는 행복도시를 연기군민이 고통을 감수하고 적극 협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그린벨트보다 더 강한 규제를 획책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고 주변지역 관리계획에 지역주민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모든 수단과 역량을 결집하기로 했다.

정부에게 요구한 내용은 주변지역 주민의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기존의 주변지역 관리방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지역주민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는 관리방안을 수립할 것, 건설청은 주변지역도 동일한 행복도시 구역임을 인식하고 예정지역과 동반 발전할 수 있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제시할 것, 건설청은 독재정권에서나 추진되는 주민 압살 방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민을 위한 정책방안을 적극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틀 후인 2007년 1월 25일, 연기군청에서 행정도시 통합추진 범군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위원회는 통합에 대한 순회 설명회와 토론회 및 전문가 초청강연회를 통해 군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해 정부와 충청남도 등에 전달할 계획이었다.

그런 와중에 정부가 '행정도시 법적 지위와 행정구역에 관한 연구용역 공청회'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충청남도와 연기군의회, 행정도시 통합추진 대책위원회 등이 강력하게 반발, 행정도시 공청회를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마침내 반쪽으로 쪼개질 위기에 처한 연기군의 잔여지역을 행정도시에 편입시키는 쪽으로 충청남도와 연기군은 의견을 모았고, 2007년 3월 29일 행정도시 통합추진 범군민대책위원회는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통합 추진을 요구하는 건의서와 군민 5만 1,928명의 서명부 3권을 충청남도와 중앙부처에 전달했다.

그러나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법적 지위와 행정구역 문제가 대선 정국과 맞물려 이슈화될 것을 우려한 정부가 주민 의견과는 무관하게 조기에 매듭지으려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1,300년의 역사를 가진 연기군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잔여지역 주민들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시민으로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충청권 시민단체들은 연기군과 청원군 지역 3,500여 명의 서명을 담은 진정서를 국회와 한나라당, 대통합민주당, 국민중심당,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게 전달했다.

반면 충청남도와 청원군은 정부 법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충청남도 내 247개 사회단체는 법안 처리를 유보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국회에 제출했고, 청원군은 관할구역에서 부용면과 강내면을 제외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충청남도가 정기 국회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안의 통과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국회통과의 큰 변수가 되었다.

충청남도는 충청남도의 토지와 인구 등을 내주는데도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충청남도에서 떨어져나가 도세와 인구가 줄어드는 이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연기군•공주시•청원군 등은 각기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2007년 10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던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으나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관련된 주민과 자치단체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2010년에 시행할 법률을 3년이나 앞당겨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혁신도시의 재검토와 보완을 주장하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로 인해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계획대로 추진될지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자치단체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은 결국 17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18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거듭 지연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두 번의 해를 넘겼다.

그러자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권은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2009년 2월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그러나 흡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 내지 못했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역과 주변지역 주민들은 허탈함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을 심사했으나 세종특별자치시를 광역자치단체 성격의 특별자치시로 하는 결정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발하여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4월 21일에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세종특별자치시의 기능을 부여하는 문제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포함된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 지역주민들과 지방의회가 계속 반발하고 있었고,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자족기능을 담보할 수있는 정부기관 변경 이전고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도 여전히 갈등의 요소로 남아 있었다.

민심은 더욱 뒤숭숭했고, 행정도시 원안추진을 촉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다.

지역민들의 단식투쟁과 삭발식에도 표류를 이어가던 세종특별자치시설치특별법은 2010년 11월 29일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2007년 5월에 법안 입법이 예고된 이후로 3년 반 만에 이루어진 극적 타결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진통을 치러야 했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등장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이라는 새로운 카드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를 외치던 충청도민들은 이제 원안을 사수하기 위해 함성을 질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