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2004, 투쟁사)

1. 명분 없는 명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위헌 결정을 맞으며 법적 효력을 상실했고, 충청도민들에게는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수도 이전에 대한 왜곡보도와 명분 없는 명분을 내세우며 신행정수도건설을 반대한 세력에 대한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세종시건설의 역사에 '투쟁'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기사님! 라디오부터 켜 주세요, 빨리요, 빨리!"
택시기사는 재촉하는 손님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목적지를 묻기도 전에 라디오를 켰다.

택시기사와 승객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해 온 헌법재판소가 대심판정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한 오후 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곧이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확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최종 심리결과가 전국의 라디오와 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상 명문의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왕조 이래 600여 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된다."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하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 개정이 이뤼져야 한다."

"정부는 헌법 개정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헌법상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위헌!"

'행정수도 위헌' 사건에 대한 3개월여 동안의 심리를 끝낸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는 최종 결정을 알렸다.

결정이 내려지자 손님도 택시기사도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연히 기각될 줄 알았는데•••."

택시기사는 섭섭한 마음에 간신히 한마디를 건넸다.

이날 연기군민과 공주시민들은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지자체, 시민사회단체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행정수도건설로 이전과 보상문제를 고민해온 지역민들은 다른 어느지역보다 큰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행정수도 후보지인 연기군과 공주시 장기면 일대 주민들은 맥이 빠져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도이전 후보지로 거론되었다가 무산됐던 기억이 생생한데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구먼유."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에 살던 윤승현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행정수도이전 범국민연대(공동대표 이창기 대전대 교수)는 이날 성명을 내고 "법치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탄생된 법안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앞으로 정부가 수행하는 각종 정책에 대해 정당성 시비릏 불러오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주민들은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기대와 포부가 한순간에 날아갔다"며 "정부와 헌법재판소,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했다.

"신행정수도건설로 고향을 떠나게 됐지만 국가 대사라고 해서 정부를 믿고 협조해 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합니까?

헌법재판소의 결정 여부와 관계 없이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은 흔들림이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기봉 연기군수는 "낙후됐던 연기지역이 신(新) 수도 이전을 기회로 시의 승격까지 기대했으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연기•공주 시민들은 "비록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해도 정부와 국민은 지혜를 모아 신행정수도건설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행정수도건설을 지지했던 여러 시민단체들도 헌재의 결정을 성토하고 나섰다.

반면 수도이전을 반대해온 부안임씨 종친회와 무주택자 등 일부 주민들은 헌재의 결정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연기군 남면사무소에서 위헌결정을 지켜보던 이들 중에는 만세삼창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인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법적 효력을 상실했고, 건설추진위원회가 진행하던 모든 작업은 전면 중단되었다.

충청도 지역민들은 관습헌법을 적용하여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헌재의 판단 근거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더욱이 법리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론분열의 조짐마져 보였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선고한 다음 날, 연기군의회 의원들은 연기군청 앞 광장에 모여 행정수도건설을 끝까지 이행해줄 것을 정부에게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4일에는 오시덕(공주연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오영희 공주시장, 이기봉 연기군수와 김태룡 공주시의회 의장, 황우성 연기군의회 의장 등이 연기군 남면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매우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운 일이며, 국토의 굴형발전과 지방분권화 그리고 수도권 과밀 해소라는 국가적 목표가 포기되거나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또한 "우리 지역 주민들은 헌재의 이번 결정이 정치적이고도 지극히 불행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며 "신행정수도건설이 계속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충청도를 비롯한 온 나라가 다시금 수도이전 논란으로 들썩거렸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를 외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가장 분노한 사람들은 연기군민들이었다.

거리로 나와 "우롱당한 자존심, 정부는 보상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주민들은 나름의 절절한 사연을 안고 있었다.

"은행서 대출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이제 어떻하죠?"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재가 아니라 수도권 헌재입니다. 분해서 한숨도 못 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독한 대통령 시정 연설에서 "누구도 헌재 결정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변함없이 추진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계획을 세워 반드시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행정수도 후속 조치를 마런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우선 후속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2004년 11월 8일 국무총리실 산하의 심의기구로 공식화했다.

후속대책위원회는 세 차례의 회의를 통해 후속대책의 5대 원칙을 확정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을 반영하고,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고, 중앙행정기관 이전을 포함하여 자족성을 갖춘 도시를 건설하고, 연기•공주 지역의 입지적 우의를 활용하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수도권 발전대책, 지방분권 등 국가균형발전 시책을 병행 추진한다는 지침이었다.


후속대책위원회는 이와 같은 지침에 따라 11개의 대안을 수립하고, 국회의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및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 결과를 수렴하여 3개의 유력 대안을 제시했다.

행정특별시, 행정중심도시, 교육과학연구도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과 금남면, 동면, 공주시 장기면 등 예정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특히 대출을 받아 다른지역에 미리 농지를 구입해 놓은 농민들은 분노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뒤숭숭한 민심은 곧 농성으로 번졌다.

충청지역 주민들은 수도 이전에 관한 편향적 기사와 보도를 전개한 언론사들을 위헌 결정의 배후로 지목했고, 이들 언론사를 타도하자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연기•공주가 후보지로 결정되자 "불어닥친 광풍(2004.7.7)" "땅 소송에도 갈라선 가족(2004.7.8)" "신유흥가 흥청망청(2004.7.9)" 등의 왜곡된 제목 아래 편향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충청지역 주민은 더 이상의 침묵을 할 수 없었다. 진실을 알리고 지역주민의 민심을 제대로 전하려면 행동에 나서야 했다.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 등도 맞불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수도권 인구 50만 명을 빼내기 위해 수도를 옮기는 것은 명분 없는 사업이라며, 헌재의 위헌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찬반 논란에 휩싸인 지역주민들은 서로 불신과 반목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