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약속들(05~07)

4.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

조치원역에서 대평리행 마을버스를 타고 약 30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나성리 마을.

이 마을에도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 잔치를 열었다.

흥겨운 풍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고향을 떠나게 된 주민들은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종촌리마을 사람들도 소소한 사진 전시회를 통해 가슴에 고향을 품는 이별의식을 가졌다.

2007년 3월 25일, 동북쪽으로 미호천이 흐르고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모처럼 흥겨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착공을 앞두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충남 연기군 남면 나성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입구 광장에서 마지막 이별 잔치를 연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데,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섭섭하네요."

100명 남짓한 이곳 주민들은 마을 입구 광장에 모여 떡과 부침, 과일을 차려놓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광장 한쪽에서는 눈물을 찍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성리 마을은 110가구, 28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로, 이 가운데 20가구 60여 명이 오는 7월 착공하는 행정도시 1단계 사업지구에 편입돼 6월 말까지 이주를 마쳐야 했다.

"고향을 떠나게 돼서 섭섭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여기서는 문 밖을 나서면 언제나 한 식구 같은 동네 사람들이 있지만 도시 아파트에서는 이웃끼리 이렇게 정을 나누고 살지 못한다던데•••."

평생 나성리에서 살아온 이금례 할머니는 어린 손녀를 무릎 위에 앉힌 채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6월 말까지 집을 비워야 하는 1단계 지구와 나머지 지역을 포함한 15가구 가량이 이미 마을을 떠났다.

같은 마을 주민 임승수 씨는 "떠난 주민들은 인근 지역으로 가기도 하지만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며 "돌아오겠다는 이들은 다섯 가구에 한 가구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한 뒤에도 농사를 계속 지을 여건이 될 지 모르겠다"며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이라 이웃들은 모두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섭섭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상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생활대책팀장은 주민들에게 "행정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로 조성해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도시가 완성된 후에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다고 믿는 주민은 별로 없었다.

한 주민은 "정부에서 원주민에게 이주자 택지를 공급하지만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 있는 형편이 돼야 가능한 일"이고, "주민 대부분이 연세가 많아서 새로운 곳에 정착하면 고향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나성리는 인접한 송원리와 함께 행정도시 시범 주거단지인 '첫마을'로 거듭나고 있었다.

첫마을 개발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 선도할 첫 사업으로, 상징성이 있고 모범적인 주거지를 개발하기 위해 도시건설 초기에 발생되는 다양한 계층의 주택 수요와 욕구에 맞는지 주택을 단계별로 건설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초기 입주자 등의 불편이 없도록 도시기반시설과 복합커뮤니티센터 등 생활편익시설을 조기에 설치하도록 하였다.

첫마을 개발계획은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의 기본개념을 최대한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수립하였다.

이러한 첫마을 개발 단계에서 지역주민의 이주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나성리 마을은 '첫마을 사업 예정지'였고, 본격적인 건설을 앞두고 마을사람들은 이미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앞에 큼지막하게 지어진 교회도 이 마을과 함께 사라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나성리 마을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는 유난히 구슬프게 들렸다.

종촌리 마을에서는 특별한 이별의식을 치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주민들끼리 '마지막 설'을 기념한 사진촬영을 했고, 그 사진들은 현수막에 프린트되어 길가에 전시되었다.

"어디로 가든 행복하고 부자되세요!"
"우리는 종촌리 주민을 잊지 않을 겁니다!"
"다시 모여 사는 날까지 건강하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이 독특한 현수막 사진전은 행정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진작가 조호연 씨가 '종촌'을 주제로 촬영한 것이었다.

<종촌 - 가슴에 품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조각, 사진, 한국화, 서양화, 설치미술, 영상, 음향예술 분야의 예술가 29명이 대거 참여한 예술작업으로, 남면사무소 주변 7개 빈 건물과 거리에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조각가 이길렬 씨는 빈 집에 버려진 노끈으로 작은 의자를 만들고 철사로 만든 새장을 오토바이 상점에 장식하여 공간의 기억을 되살렸다.

한국화가 김억 씨는 비석•문패•간판 등을 탁본한 마을의 흔적을 옛 타월공장에 전시했다.

사진작가 전재홍 씨는 2대에 걸쳐 30년 동안 종촌리의 사랑방이었던 다방 '수다실'의 풍경을 앵글에 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부안임씨 600년 전과 종촌 - 근•현대사 유물전도 옛 종촌교회에서 함께 열렸다. 

프로젝트팀 이상봉 사무국장은 "예술과 거리가 먼 농촌마을 <종촌>에 작가들이 모인 이유는 고향을 떠나는 이들을 위로하고 세종시가 건설된 뒤에도 모두가 '종촌'을 기억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행정도시가 공공미술이 숨 쉬는 공간으로 건설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종촌 - 가슴에 품다'라는 전시회의 이름처럼 마을사람들은 종촌마을을 가슴에 품으며 담담히 이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