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2. 촛불이 꺼졌어요

연일 계속된 집회를 통해 연기 지역주민들은 억눌렸던 분노를 토해냈다.

이제 그들에게 신행정수도건설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생계와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촛불이 꺼지면 다시 촛불을 켰다. 수백, 수천 개의 촛불에는 그렇듯 뜨거운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말도 말아유, 속 타 죽것으니까. 행정수도 때문에 우리 주민들만 억울하게 됐슈."

"헌법재판관이고 한나라당이고 간에 옆에 있으면 그냥 늑신 때려줬으면 속이 시원하것는디."

충남 연기군 남면에 사는 주민들은 이번 행정수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빚더미에 앉게 생겼다며 저마다 울분을 터뜨렸다.

"누가 오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사전에 주민들한테 동의를 구했습니까?

 정치하는 양반들이 자기들끼리 행정수도 이전한다고 국회에서 법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위헌이니 어쩌니 해서 이제 주민들만 죽어나게 생겼습니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하나유?"

자기 땅과 집이 행정수도 입지에 포함된 연기군 주민들은 앞날을 대비하고 있었다.

일부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정부가 계획대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며 행정수도건설이 무산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은행에서 1억 원을 대출받아 인근 지역에 농지를 구입한 농민도 있었다.

땅값이 뛰면 대토(代土)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무리를 해서 땅을 사놓은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슈? 우리는 행정수도가 분명히 오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농사지을 땅을 미리 구해놨던 건데•••. 이제 그 땅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눈앞이 깜깜허네유."

"이제 우리 가족은 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그 많은 돈을 무엇으로 갚을까요. 집 팔고 논 팔아봤자 이자도 낼 수 없으니, 이제 누굴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프리미엄까지 얹져주고 분양 받은 아파트 가격은 폭락 위기에 처했고, 많은 위약금을 내고 중도 해약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남편의 월급을 모아 생애 처음으로 마련한 집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저희는 2순위였어요. 그래서 당첨이 될 줄 알았는데 행정수도 때문에 투기바람이 불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프리미엄을 얹져주고 겨우 아파트 한 채 장만했는데, 이제는 분양가에도 안 팔리게 생겼으니 어쩌면 좋아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직격탄을 맞은 연기군과 공주시 주민들은 헌재를 규탄하고 정부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24일, 연기군 남면 종촌리 성남중학교 앞에서 열린 규탄대회에는 지역주민 200여 명과 농민,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이 모여 피해 주민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리고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국가균형발전을 가로막은 헌법재판소와 행정수도 이전을 당리당략에 이용한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성명서도 발표했다.

"소수의견으로나 있을 법한 불문헌법 논리를 내세워 위헌을 결정한 헌법재판소는 서울 중심주의와 서울 이기주의 정당화를 위한 기관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부당한 결정은 또다른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탄했다.

일부 주민들은 삭발식과 화형식을 통해 억울함과 분노를 표현했고, 한 주민은 혈서를 쓰기까지 했다. 헌재를 비난하는 과격한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첫 규탄집회를 시작으로 헌재의 위헌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는 확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만큼 충청권의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2004년 10월 28일 오후 3시, 대전역 광장에는 5,0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했다.

당초에는 집회 제목을 '헌재 위헌 결정 규탄 범국민대회'로 정했으나 자칫 헌재의 결정에 대한 불복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신행정수도건설 사수 범국민대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신행정수도건설의 중단 없는 추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인사들이 찾아왔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으나 현장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충청도가 화가 나서 서울과 한판 붙는 것이 아니라, 전국이 골고루 잘살기 위해 모인 투쟁의 자리입니다.

신행정수도가 건설되지 않으면 서울을 제외한 전국 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뒷걸음질 치는, 희망 없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이날 참석한 나주시장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 유감을 드러내며 집회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위헌 결정이 서울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며, 보수언론의 부추김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특히 수도이전 반대를 주장하는 사설을 집중적으로 게재함으로써 보수층과 정치권을 부추긴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뜻으로 조신형 대전시의원과 대전•충남•충북 3개 시도의회 의원들은 삭발에 동참했고, 전성환 아산YMCA 사무총장과 이기동 자치분권연대 경남대표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혈서로 "신행정수도 사수"라는 글을 썼다.

동시에 광장에서는 헌법재판소를 상징하는 짚더미가 불에 태워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불길 속에 던지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으나, 집회는 끝까지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다.

이어서 대전역에서 충남도청까지 거리행진 시위가 벌어졌다.

다음날인 2004년 10월 29일에도 헌재의 위헌결정을 규탄하는 궐기대회가 이어졌다.

연기군 주민 5,000여 명이 조치원역 광장에서 모여 행정수도건설 사수를 결의하고 한나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가 주관한 이 궐기대회에서 주민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정의에 반한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를 농락한 불순한 사법독재"라며 "수도권 이익을 대변하는 헌법재판소를 국민의 힘으로 해체시키고, 단결된 힘으로 행정수도를 사수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이기봉 연기군수는 이날 "한나라당이 법을 만들 때는 언제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도록 역할을 하는 것은 또 뭐냐, 운전수가 운전을 잘못해 차멀미가 나기에 한나라당에 더 이상 몸담을 수 없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또한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는 충청남도의회 유환준(연기)의원과 연기군의회 조선평, 지천호 의원도 "연기군의 발전을 가로막는 한나라당을 떠나겠다"고 탈당 의사를 밝혔다.

이날 대회에 참여한 주민 김한식 씨를 비롯한 10명은 혈서로서 비통한 심정을 표출했으며, 양석기 씨 등 5명은 삭발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화형식으로 헌법재판소와 한나라당에 대한 충청도민의 강럭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조치원역에서 연기문예회관까지 도보행진을 벌이며 성난 민심을 드러냈다.

삭발식이 거행될 때 그동안 참았던 울분이 폭발해 눈물을 터뜨린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삭발에 나선 사람과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고, 감정이 북받쳐 오열하는 이들도 있었다.

24일 연기군 남면에서 시작된 집회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27일 공주, 28일 대전역, 29일 조치원역 광장에서 연달아 개최되었다.

각자의 일상을 미뤄놓고 연일 집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주민들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이었는지를 말해주고도 남는다.

반면 신행정수도 이전 남면주민대책위원회 육해일 부위원장은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세력에 빌미를 제공하고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며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이 시작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주민 70퍼센트 이상은 신행정수도가 들어오길 바랐다.

보상을 더 받기 위한 반대도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발언은 수도이전에 반대했던 주민들에게도 헌재결정이 작지 않은 충격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전에는 반대파 사람들이 찬성파 주민들을 비판했지만, 헌재 결정 이후에는 입장이 뒤바뀌어 반대파 사람들이 미안함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였다.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연기•공주 지역이 행정수도 예정지로 선정되고, 정치권의 갈등으로 신행정수도건설이 죄절되는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도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것이다.

주민들 중에는 "이번 기회에 보상을 받아 빚도 갚고 편안한 여생을 누리고 싶은 기대도 있었다"면서, "그런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자 분노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일부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받으려고 빚까지 내서 집을 수리하기도 하였다.

재래식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바꾸거나, 빈 밭에 나무를 심기도 했다.

예전에는 벼베기가 끝나면 논바닥에 짚이 깔려 있었으나 축산농가에서 소를 더 사들이는 바람에 사료로 쓸 짚더미가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더욱이 이제는 땅값이 뛰어서 농사짓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육해일 부위원장은 "추수가 끝나면 남면지역주민대책위원회가 해체되고 비상대책위원회로 확대 개편될 것"이라며 "어떤 대안으로도 농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없는 만큼 반드시 신행정수도가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한번 폭발한 민심은 연일 집회로 이어졌고, 주민들은 힘겨운 투쟁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11월 3일 오후 2시, 천안 시외버스터미널 앞 아라리오 광장에는 주민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중단 없는 신행정수도 추진'을 촉구하는 범도민대회가 개최되었다.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도 충남 각 시군에서 주민들이 연이어 도착하는 바람에 군중은 금새 1만명으로 불어났다.

급기야 광장이 꽉 메워지자 도로 2차선까지 점거한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수! 신행정수도"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서 다음과 같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충청권은 분노한다, 정치권은 각성하라!"
"관습헌법 웬 말이냐, 헌법재판소 해체하라!"
"위헌결정 대비 못한 집권여당 사과하라!"
"행정수도 외면하는 조선, 동아 각성하라!"

광장 중앙에는 "충청민이 단결하여 신행정수도 건설하자"라고 쓰인 대형 걸개가 걸렸고, 근처에는 헌법재판관들을 상징하는 허수아비가 세워졌고, 광장 한편에는 충남자치분권연구소 회원들이 헌법재판관 탄핵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범도민대회가 열리는 광장 한복판에는 조선일보 100여 부가 뿌려졌고 그 옆에서 한 청넌이 "조선일보, 밟고 가세요"라며 목청을 높였다.

나라의 발전에 역행하는 조선일보를 시민들이 밟게 함으로써 조선일보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퍼포먼스였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각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참가해 위헌 결정의 부당성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왜곡 보도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일부 흥분한 시위대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등 집회가 계속될수록 주민들의 감정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11월 4일, 연기군농업기술센터에서는 연기지역 6개 농민단체의 궐기대회가 열렸고(연기농민 3,000명의 신행정수도 위헌결정 궐기대회), 11월 5일에는 충청남도이장단협의회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상경 투쟁을 벌였다.

11월 6일에는 신행정수도건설 비상시국회의가 대전 동방마트 앞에서 헌법재판관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였다.

그리고는 매주 동방마트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 단체에서는 충청권 집회뿐만 아니라 서울로 올라가 정치권과 정부여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11월 16일에는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상임대표 황순덕 이하 대책위)가 연기군민회관에서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기봉 연기군수, 황우성 연기군의회 의장, 연기군 206개리 마을이장단, 연기군 사회단체장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회자로 나선 정상용 대책위 조직위원장은 "얄팍한 표 계산으로 우리 주민들을 이용하고 있는 정치권과 말도 안되는 관습헌법이라는 문구 하나를 내세워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헌법재판소에 대항하여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 이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날 투쟁선포식에서는 신행정수도건설 투쟁을 내용으로 한 비디오, 패러디물을 상영하고 신행정수도건설의 당위성에 대한 교양강좌도 펼쳐졌다.

그리고 11월 22일을 '행정수도 국민결정의 날'로 정하고, 이날 하루를 연기군의 임시 휴무일로 선포하여 군민 모두가 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황순덕 상임대표는 "지하철과 차량 등을 비롯해 서울까지 삼보일배 등 홍보전을 펼치겠다. 충청권이 뭉쳐 투쟁하면 신행정수도건설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며 지역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투쟁결의대회 마지막 순서였던 조덕원 씨와 고희순 씨가 투쟁결의문을 낭독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투쟁 의지를 강하게 불태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