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약속들(05~07)

1. 수병수약(授病授藥)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 제정되어 충청권 지역민은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곧이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확인소송이 제기되어 또다시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합헌결정이 내려졌고, 충청권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기•공주 주민들의 보상에 관한 진통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기쁨의 시간은 짧았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따른 부작용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신행정수도와 관련된 계획들이 모두 효력을 상실하면서 이와 연계된 정책들 역시 차질을 빚었고, 정부를 믿고 따랐던 충청권 주민들, 특히 연기와 공주지역 주민들이 받아야 했던 물적•심적 타격은 작지 않았다.

"신행정수도 추진을 믿고 인근 청양 등지에 대토(代土) 등을 사놓은 주민들은 재산상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알맹이 없는 대안으로 전락할 경우 지역민이 입을 피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연기군의 한 부동산 업자는 부작용의 심각성을 이렇게 토로하며 후속대책의 시급성을 알렸다.

2004년 10월 21일,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 판결에 따라, 행정수도건설을 위해 설치되었던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해산되었다.

그리고 위헌판결 20일 만인 2004년 11월 18일,  국무총리 직속의 후속대책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정식 명칭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결정에 따른 후속대책위원회"로, 30자에 이르는 기나긴 이름이 그간의 우여곡절을 말해주고 있었다.

위촉된 위원들은 대부분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위원들이었다.

행정수도를 반대하는 보수언론과 학계의 질타 속에서도 소명의식을 지니고 '행정수도 입지선정'과 '기본계획 수립' 등의 주요 사업과정을 어렵게 추진해온 위원들로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정부에서는 위헌 청구를 미리 예상하고, 6월부터 헌법소원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법무법인 '화우'와 '태평양'에 변론을 의뢰하고 정부대책회의를 구성하여 대처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11월 말 정도로 예상되었던 것보다 빠른 10월 19일로 선고일을 발표하였고, 이에 대해 법률대리인단은 "더 이상 문안 작성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마큼 기각 또는 각하를 예상할 수 있었고, 현 재판관의 성향(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기각결정)으로 볼 때도 위헌결정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그런 예측에 정부 및 추진위원회 위원들은 모두 위헌 제청이 기각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한편 신행정수도 입지로 결정된 연기•공주 등을 비롯한 충청도민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졌다.

참여정부 역시 이를 계승할 묘책을 강구하기에 바빴다.

후속대책위원회는 간담회, 세미나, 토론회 등의 전문가와 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헌재의 위헌판결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하여 행정도시건설을 계속 추진할 방안을 강구하였다.

이때 헌재가 헌법상의 수도를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로 규정하면서도 정부 각 부처의 소재지를 수도 결정의 결정요소로 볼 수는 없다고 한 판결내용은 후속대책의 핵심지침이 되었다.

이에 따라서 국회와 청와대를 제외한 행정중심의 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여러차례에 걸친 회의와 실무협의를 통해 11개의 대안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행정특별시, 행정중심도시, 교육과학연구도시 등 3개 안으로 압축되자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후속과업을 국회로 넘겼다.

국회는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2004년 12월 8일 '신행정수도 후속대책과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후속대책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2005년 1월 6일 제4차 회의를 충남도청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연기•공주지역 현장을 방문했다.

국회특위 위원들의 방문 소식을 접한 신행정수도지속추진범대전시민연대와 충남연대 회원들은 제각각 입체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당일 범대전시민연대 회원들은 대전역 출구에서 "신행정수도, 정치권은 결단하라"는 피켓을 준비하고 특위 위원들의 이동과정을 동행했다.

민무심(民無心)이 불립(不立)이라는 말이 있는데, 백성을 믿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습니다."

이날 국회특위 4차 회의에 참석한 심대평 충남지사도 뼈 있는 말로, 행정수도 위헌 문제로 떨어진 국가의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원안에 근접한 후속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원종 충북지사 역시 "신행정수도건설이 타운이나 몇 개 부처를 옮기는 것으로 끝난다면 결국 수도권 과밀화 해소도 못하고 균형발전도 못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며 국회특위 위원들의 '무거운 어깨'를 강조했다.

이어서 국회특위 위원들은 연기•공주 현장을 답사했다.

김한길 국회특위 위원장은 가는 곳마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다.

"와! 좋다. 훤하게 잘 보인다.. 풍수는 모르지만 명당 같다."

김 위원장은 금남초등학교 옥상에서 브리핑 후 전월산과 원수봉을 바라보며 지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월산교에 내려서도 "이쪽 지역은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저쪽 지역은 환경보호를 해야겠다."며 나름대로의 신도시 설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주민 500여 명이 국회특위 위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박수에 담긴 의미는 서운한 감정을 접어두고 앞으로 '잘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극렬했던 시위와 집회를 의식한 듯 특위 위원들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담담해 보였다.

특위 위원들이 돌아갈 때에도 "이번만큼은 여야가 함께 잘해야 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시민단체의 거센 공격을 예상했던 충남도청, 연기군청 공무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제정을 철회하라는 경기도 지역의 요구 속에서, 2005년 3월 2일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행정도시건설특별법(안)'이 의결되었고, 2005년 3월 18일 이를 제정 공포하였다.

이 법률은 공포 후 2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지만, 시급성이 인정되는 건설추진위원회의 조직구성, 예정지역과 사업시행자 지정,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방지 조치 등은 공포 즉시 시행할 수 있었다.

연기•공주 주민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모처럼 환영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득별법은 원안추진에서 한 발 물러난 대안이었기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절반의 성공이나마 환영했다.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찬반대립으로 인한 주민들 간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고 험했다.
수도분할반대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여 이 법률에 대한 위헌 소송을 또다시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2005년 6월 15일, 최상철 수도분할반대국민운동본부 대표와 이석연 변호사 등 222명은 헌법재판소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확인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러자 당일 새벽,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원회 김일호 집행위원장과 김성구 상황실장 등 20여 명은 서울로 달려가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며 1인 시위를 이어갔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는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이 제기한 위헌 소송에 대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정부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고,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이 헌법소원의 근거로 제시한 항목들을 반박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의 주관 부처인 건설교통부를 대리할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헌법소원에 대처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수도로 볼 수 없어, 동 도시건설은 청구인의 국민투표권, 청문권 등의 침해 가능성이 없다."

2005년 11월 24일, 마침내 헌법재판소는 헌법 소원을 각하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의 합헌 결정에 충청권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대책위 환영성명서 삽입>

연기와 공주지역의 주민은 물론이고 대전시와 충청남북도 자치단체,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성명을 발표하고 축하행사를 준비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은 2004년 10월의 첫 집회로부터 100번째인 날로, 조치원역 광장에는 2,000여 명이 모여 축하행사를 벌였다.

무대에 올린 걸개그림에는 단식농성과 재정 후원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투쟁에 앞장섰던 1,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주민들 중에는 감격에 겨워 기쁨의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대전시 중구 으능정이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떡을 돌리며 자축했고, 열린우리당은 천안에서 중앙당 차원의 축하행사를 준비했다.

충청권행정협의회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의 합헌결정을 자축하면서 성공을 기원하는 대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500만 충청인들이 단결해 합헌을 이끌어낸 것과, 600여 년 만에 국가의 중심이 충청권으로 옮겨진 만큼 성공적인 행정도시건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의지를 다졌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의 합헌결정 소식은 연기•공주 주민들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1년 동안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며 웃고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