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건설의 첫 단추를 채우다

2. 전 국민을 도시건설에 참여케 한 공모전

2006년 8월 오후, 몇 명의 일본인들이 행복도시건설청을 방문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사무관과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일하는 컨설턴트들로, 세종시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건설청 관계자와 미팅을 마친 일본인 사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도 언젠가는 한국처럼 수도 기능 이전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한국의 경험을 배우러 왔습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던 선진국 일본이 '언젠가는 한국처럼' 되기 위해 배우러 왔다니, 다소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사실 도쿄는 세계적인 인구과밀 도시로 인구 분산을 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수도 이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세 곳의 후보지까지 거론되었으나 과도한 재정 낭비와 비효율성을 내세운 반대론자들의 반발에 막혀 지금은 잠정 중단된 상태에 있다.

사실 그 무렵 세종시를 찾은 해외 손님은 일본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사우스다코다주립대학 총장 일행, 중국 흑룡강성의 이춘시 시장 일행도 세종시를 다녀갔다.

2006년 당시는 세종시건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건설 초기 단계로, 공식적인 착공이 1년 뒤인 2007년 여름이었다.

방문객들은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그들의 관심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입지 선정의 과정을 비롯하여 건설 계획의 수립 과정, 부동산 투기와 주민 보상 과정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물론 세종시는 건설 초기부터 이러한 기반 작업에서 그들의 시선을 끌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가장 민감한 입지 선정이었다.

2004년 당시 정부는 신행정수도 입지 조건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위해 3개 시도의 협조를 얻어 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입지의 우선순위는 국가 균형발전의 효과, 교통(접근성), 환경, 자연조건, 경제성 순이었다. 이러한 조건을 기반으로 입지를 물색할 전문평가단 80명을 전국 16개 시도 지자체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전문평가단을 천거받자는 아이디어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타 지자체의 협조를 구하고 공정한 평가를 진행하기에 주효했다.

예비 후보지가 4개 지역(진천•음성지역, 천안, 연기•공주지역, 논산)으로 좁혀졌을 때는 부동산 투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후보지 명단을 국민에게 공개하였다.

투명한 절차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조치였다. 결과는 아름다웠다. 언론사마다 행정도시로서의 적합성을 따져보는 기사를 제시하여 자연스럽게 국민 여론의 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종 입지가 연기•공주지역으로 정해졌을 때 반발이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명한 절차에 따른다면 충분히 국민적 합의를 얻어낼 수 있다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세종시의 입지 선정 방식은 이후 충남도청과 경북도청 이전, 혁신도시 건설의 과정에도 길잡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세종시라는 도시는 어떤 철학으로 설계되었을까.

건설특별법이 정하고 있는 바, 세종시는 '상생과 도약, 순환과 소통'이라는 이념으로써 국가 균형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그 이념은 다음과 같은 목표와 비전으로 구체화된다.

[행복도시 목표와 비전]
<복합형 행정•자족도시>
• 국가균형발전을 이끄는 대한민국 중심도시
• 다양한 도시기능이 공존하는 복합형 도시
• 시민친화적인 행정도시

<살기 좋은 인간중심도시>
• 소통이 원활한 장벽없는 공동체 도시
• 문화와 여유가 있는 빠르고 편리한 대중교통중심도시
• 재해•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

<쾌적하고 아름다운 친환경 녹색도시>
• 자연과 어우러진 친환경 생태도시
• 자원절약형 에너지 특화 도시
• 아름답고 개성 있는 디자인 도시

<품격 높은 문화•정보도시>
•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문화도시
• 디자인•건축물 특화도시
• 풍요롭고 따뜻한 복지도시

<세계적 행정수도>
• 실질적인 행정수도 기반을 갖춘 대한민국 중심도시
• 행복도시 차질없는 조성을 견인하는 특별자치시
• 행정수도 국제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행정수도

<사람중심 행복도시>
• 복지안전망 및 공공의료서비스가 높은 따뜻한 복지도시
• 아이와 여성, 가족이 살기 좋은 행복도시
•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도시
• 사람이 먼저여서 시민 모두가 행복한 안전도시
• 누구나 살고 싶은 환경친화도시

<조화로운 균형발전도시>
• 원도심 활성화로 젊어지는 청춘도시
•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사는 도농교류도시
• 일자리가 있고 활력있는 자족도시

<시민참여 열린 소통도시>
• 시민과 항시 대화하는 소통도시
• 시민중심 생활편의를 제공하는 시민중심도시
• 상생발전을 위한 대외협력도시

행복도시건설청은 이러한 목표와 비전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공모전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본계획을 세워나갔다.

특기할 점은 '추첨'방식으로 아파트 건설업체에게 토지를 공급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설계공모를 통해 신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제공하는 업체에게 부지를 우선 공급하는 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단독주택은 특색을 갖고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부지 공급 전에 마을의 디자인과 테마를 계획하여 분양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상업용지도 '최고가 입찰' 방식을 탈피해 국내 최초로 건축계획, 관리운영계획, 가격을 종합평가해서 건축하는 사업제안공모 제도를 도입하여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는 업체에게 토지를 저렴하게 공급하였다.

공공부문은 설계공모, 기술제안 입찰 등을 통해 공공청사, 복합커뮤니티센터 등 61개의 공공건축물과 83개 교량에 교량에 최신의 기술과 공법을 도시에 집약하여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건축과
교량 박물관이 되도록 했다.

                       ▲ 한두리대교 야경

                       ▲ 학나래대교 야경

                          ▲ 아람찬교 야경

세종정부청사, 국립박물관 단지, 중앙호수공원, 첫마을, 행정타운 등은 전 세계 도시설계 및 건축분야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공모전의 결과다.

특히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도시개념' 국제공모는 도시기본설계에 앞서 생활•교통•문화•자연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거시적인 구상작업이었다.

2005년 11월까지 총 25개국에서 121개(국내 57개, 국외 64개) 작품이 접수되었고, 심사위원단은 세계적인 인문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를 수장으로 한 도시설계 분야의 국내외 최고 권위자들로 구성되었다.

심사 결과 5개의 당선작과 5개의 장려작을 선정했는데, 1등 작품을 선정하지 않고 10개나 되는 작품을 고른 이유는 각각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개념은 장피엘 뒤리그(Jean-Pierre Durig)와 스페인의 안드레스 페레아 오르테가(Andres Perea Ortega)가 공통적으로 제안한 고리형(Ring) 도시 구조였다.

도심 한복판을 녹지공간으로 채우고 주변 22개 지역에 2만명 단위의 생활권을 균등하게 분산 배치하며, 원형으로 순환하는 대중교통망을 구축하는 아이디어였다.

고리형 도시구조를 토대로 하되 나머지 당선작과 장려작에 제안된 아이디어들을 흡수하여 정교한 설계와 개발이 실시되었다.

세종시 도시구조의 매력이자 특징은 도시기능과 교통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심기능에 따라 도시 전체는 6개의 생활권으로 구분되는데, 크게 도시행정지구, 문화•상업지구, 중앙행정지구, 첨단산업지구, 의료•복지지구, 대학•연구지구로 나뉜다.

또한 22개 생활권을 순환하는 대중교통망으로 인해 시민들은 어느 구역에 살든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고 20분 내에 출퇴근할 수 있고, 각 커뮤니티 안에서 문화•체육•복지•보건•의료 등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중심부에 있는 호수공원과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균형발전과 분권화의 상징을 잘 담아내고 있을뿐더러 생태적이고도 민주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도시 철학까지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도시의 마스터플랜이 수립되는 시기에 진행된 도시명칭공모전 또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원래 세종시의 정식 명칭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국회가 정한 건설특별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명칭이 길어서 행복도시, 행정도시, 행정중심도시 등 다양한 약칭으로 불리면서 불편과 혼동을 초래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정체성이 반영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에 2006년 국민적 합의를 구하는 차원에서 국민공모제를 시행한 결과 2,000여개의 명칭이 접수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도시의 비전, 역사성, 간결성, 대중성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수차례의 심의를 거친 끝에 '세종, 한올, 금강'을 최종심의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연기지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담겨야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연기'라는 이름을 포함한 4개의 지명이 후보에 포함되기도 했다.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결정된 '세종(世宗)'은 '세상의 으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나라의 중심에 위치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취지에 부합하기도 하지만,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되는 세종대왕과 연기군의 남다른 인연이 닿아 있기에 역사적 취지에도 잘 들어맞았다.

우선 이 지역에서 솟는 약수인 전의초수로 세종대왕의 안질을 치료한 기록이 있고, 세종대왕의 충신인 성삼문의 사당(문절사)와 김종서 장군의 묘소도 이곳에 있고, 금강변의 독락정 일대는 세종대왕이 부안임씨 문중에 하사한 땅이었다.

또한 세종시는 우리나라에서 인물명을 지명으로 삼은 첫 사례로, 워싱턴•뉴욕•벤쿠버•시드니•빅토리아•푸트라자야 등과 같이 위인의 이름을 차용한 해외 도시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명칭이다.

세종정부청사, 국립세종도서관, 대통령기록관 등의 공공건축물 역시 설계 공모와 기술제안 공모의 결과물이다.

공모의 공통적인 지침은 창의적이되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하며,개발계획은 에너지가 절약되는 환경 친화적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세종정부청사는 행정도시의 상징이기 때문에 더욱 엄밀한 기준이 적용되었다.

첫째 기존의 권위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단지형 배치를 지양하고 시민들이 접근하기 쉽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분산형이어야 할 것,

둘째 야간 및 휴일에도 활력 있는 청사거리가 조성될 수 있도록 중앙행정기능과 주거•상업•문화 등 다양한 도시기능들이 복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

셋째 중심행정타운의 상징성과 대표성 등을 감안하여 21세기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기능하여야 할 것.

2007년 1월까지 접수된 국내외 56개의 공모작 중에서 1등작으로 선정된 'Flat City, Link City, Wero City'은 매우 획기적인 구조로, 18개의 분절된 건물이 브리지와 옥상정원으로 연결돼 전체적으로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역동적인 곡선을 이루고 있다.

설계의 취지는 '세종시의 자연환경이 어울리도록 높지 않게(flat) 건물을 지어 서로 연결(link)한 자연친화적 도시를 만들자'는 것으로, 저층 일체형인 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에 충실하면서도 지면과 지붕의 조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하여 친환경적이면서 조형성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종정부청사의 건물은 높이가 아니라 길이로 측정된다.

옹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총리실을 시작으로 총 3.5킬로미터나 되는 길이를 자랑하는데,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평평한 지붕에 꽃과 나무를 심어 도심 속 휴식•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대폭 저감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국제설계공모 심사위원장을 맡은 호주의 건축가 피터 드로게(Peter Droge)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한 세계적 건물"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격적인 디자인에 뒤따르는 불편과 문제점도 없지는 않았다.

미적인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실용성과 보안성이 취약하다는 게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건물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이동하는데 시간이 소비되고 부서 간 업무 연계성이 떨어지는 것도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낮고 친근한 행정'의 상징으로서 청사 지붕을 시민의 산책길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현재 보안상의 이유로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세종시는 공모전의 경연장이었다. 건축 및 건설분야를 비롯하여 교통, 환경, 에너지, 명칭 등 모든 분야에서 공모전을 시행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얻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수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가장 눈에 띄는 거리와 건축물과 다리는 개성적이면서도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디자인은 저마다 다르지만 세종시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건설사나 시공업자에게 일방적으로 발주하는 식이었다면 '누구나 살고 싶은 명품도시'와는 거리가 먼 획일적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행복도시건설청은 인간중심의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디자인을 유도하는데 집중했다.

도시 디자인 전반의 일관성 및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모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공정한 심사를 관리함으로서 품격 있고 아름다운 디자인 도시를 뒷받침했다.

'7대 경관과제'나 '좋은 건축물 지정제도'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7대 경관과제란 건축물 미관, 옥외광고물, 도시환경 색채, 공원•녹지•수변공간, 도시구조물, 공공시설물, 야간경관에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개성적인 디자인이 세종시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다.

좋은 건축물 지정제도란 설계단계에서부터 전문가가 참여해 친환경성•색채•조경 등을 평가하고 자문을 거친 후 반영된 결과를 심사하여 '좋은 건축물'을 인증하는 시스템이다.

국내 도시개발 사업에서 이렇듯 분야별 공모전이 최대치로 활용된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