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드 • 여정의 시작

2. 말 많고 탈 많아도 직진이다!


충청권 행정수도건설은 국정운영의 핵심과제로, 이를 추진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숱한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충청권의 지역민은 크게 환영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긴장과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수도권 단체들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며 철회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이렇듯 찬성과 반대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세종시 역사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말 많고 탈 많아도 이제부터는 직진이다.

2003년 2월 25일, 조치원역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대형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중앙과 지방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야 합니다. 지방은 자신의 미래를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중앙은 이를 도와야 합니다.

저는 비상한 결의로 이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취임식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환심용 공약이 아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쁨과 환희, 걱정과 근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신행정수도건설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의 핵심과제로서, '분권'과 '분산'이라는 21세기 국가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첫 행보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연차별 일정계획, 한국에 적합한 행정수도건설모델, 외국의 사례 등을 집중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 어디서나 골고루 잘사는 선진형 분권국가 구현'이라는 기본 구상 아래 네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도시, 저밀도의 쾌적한 생태와 정보도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도시, 다른 지방도시와 보완관계를 맺는 도시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신행정수도 추진을 위해 청와대 정책실 내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을, 건설부 내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을 설치하여 2003년 4월 14일 정부중앙청사 615호실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가졌다.

단장으로는 권오규 정책수석비서관을, 업무를 총괄하는 간사는 신행정수도 공약에 적극 참여했던 배기찬 정책관리행정관이 맡았다.

기획단을 지원하는 건설추진지원단은 행정수도건설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데, 건설부의 이춘희 단장을 포함하여 각 정부부처 등에서 파견된 28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의 자문을 위해 자문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자문위원회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전문분과자문위원회(위원장 김안제 서울대 명예교수)와 충청권 여론선도층을 중심으로 한 지역분과자문위원회(위원장 강용식 한밭대 명예총장)로 나누어졌다.

전문분과자문위원회는 자문위원회가 구성된 후 2003년 말까지 8차례에 걸친 자문회의를 개최했고, 효과적인 자문활동을 위해 다시 6개 소위원회로 나누어 중점적인 자문활동을 펼쳤다.

각 소위원회 구성과 위원장으로는 국토도시계획분야에 서의택 부산외대 총장, 교통분야에 임승달 강릉대학 전총장, 건축도시설계분야에 여홍구 한양대 교수, 경관조경분야에 양병이 서울대 교수, 방재분야에 강영석 홍익대 교수, 환경분야에 황희연 충북대 교수가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한편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을 연구하기 위하여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14개 국책연구기관; 관련학회 등으로 연구단(단장 이규방 국토연구원장)이 구성되었고 '신행정수도 도시기본구상연구', '신행정수도 입지선정 및 평가기준연구', '행정수도 이전 효과분석 및 국내외 사례조사' 등의 기본 연구용역을 수행하여 행정수도건설의 기본지침과 방향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신행정수도건설에 관한 전문가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구를 통한 신행정수도 계획의 내실을 도모하고자 공모를 통해 36개의 세부 연구과제를 선정하였고, 이들 연구결과는 행정수도건설의 부분별 계획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되었다.

한편 신행정수도 후보지 선정과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 조사를 위해 토지개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을 주축으로 한 조사단이 구성되었다.

조사단은 2003년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충청권 전역을 대상으로 자문위와 연구단의 의견을 반영한 12개 대항목 48개 세부항목의 기초자료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이를 데이터 베이스화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모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했다.

시행 사업의 주체와 취지 그리고 기본구상이 명확히 제시된 법안이 마련되어야 추진 과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추진 기구의 설치, 건설재원 마련, 난개발 방지 등 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한 검토를 거쳐 총 8장 61조, 부칙 3항으로 구성된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제정안을 입안하여 2003년 10월 21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신행정수도건설을 추진하는 최고의결기구로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를 두고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민간전문가가 공동으로 수행하며, 100인 이하의 자문위원과 실무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을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신행정수도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신행정수도건설 특별회계를 설치하도록 하고 주요 국가기관의 이전계획과 건설 기본계획 수립, 신행정수도 예정지역과 난개발 방지를 위한 주변지역을 지정, 난개발 부동산 투기방지계획, 광역도시계획, 개발 절차 등을 규정해 놓았다.

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의 이전계획을 마련하되 입법부, 사법부,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이 포함되는 경우는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되었다.

다만 실제적으로 행정수도로 이전대상기관 선정시 국회 대법원 등의 헌법기관은 3권 분립정신을 존중하여 당해 헌법기관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하고, 이전을 희망할 경우에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계획에 포함토록 하였다.

이 법안에 따르면 신행정수도 예정지역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은 2010년까지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며, 토지를 매입할 때 2004년이 아닌 2003년 1월 1일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하도록 되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난개발과 투기를 억제하는 일로, 신행정수도 예정지역과 주변지역이 공개되는 시점부터 도시 기본계획이 수립되는 2010년까지 각종 개발행위와 건축허가를 제한하고, 후보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투기가 발생되지 않도록 관계 부처에 토지거래 허가 구역과 투기지역, 투기 과열지구 등을 지정하는 요청 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신행정수도의 명칭과 행정구역 등을 별도 법률인 '신행정수도 지위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정했다.

낙관할 수 없었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안)은 2003년 12월 29일, 건설교통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재석의원 194명 중 찬성 167명, 반대 13명, 기권 14명 등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렇게 야당과 다른 지방의 큰 반대 없이 압도적으로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여당, 기획단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법안과 함께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혁신도시건설 등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과 지방분권특별법(안) 등 지방분권 3대 특별법을 함께 상정하였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은 재석의원 203명 중 찬성 172명, 반대 26명, 기권 4명으로 통과됐으며, 지방분권특별법(안)은 재석의원 192명 중 찬성 187명, 반대 2명, 기권 4명으로 의결됐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정부로부터 이송되어 2004년 1월 16일 공포되고, 2004년 4월 17일 시행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국가의 백년대계인 행정수도 이전이 국민의 여론수렴 과정도 없이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략적 결정으로 이뤼졌다고 비판했지만, 충청권 지역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연기•공주•대전을 비롯한 충청권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심대평 충남지사는 "특별법 제정은 험난하고 긴 여정의 첫 출발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 충청인이 단합된 모습을 보여줬듯이 앞으로도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라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