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간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어요. 평일에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참석하겠어요, 마침 그날 비가 오더라구요.
일회용 우의까지 준비해서 서울 종로로 가는데 차가 밀리고 하니까 짜증이 나서 행정수도 반대하고 관두자고 투덜거리는 분도 있었죠.
겨우 종묘공원에 도착했는데, 원래 거기엔 어르신들 많이 계시잖아요.
제가 먼저 단상에 올라가서 사회를 봤는데, 그분들이 바로 화를 내시더라구요.
"노무현이 시위하라고 시켰냐"
"촌놈들이 올라와서 떠들어봤자 가당키나 하냐, 행정수도라니, 턱도 없는 일이다" 이런 식이었죠.
어르신들의 손가락질에 기도 죽고 착잡하기도 했죠. 그런데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관두자고 투덜대던 주민 어르신들의 목청이 정점 커지더라구요.
서울 분위기가 냉랭한 걸 보고는 뭔가 깨달은 거죠. 아; 우리끼리 지방에서 외쳐봤자 소용없구나.
그때 내부적으로 강하게 결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행정수도라는 사안은 충청도민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으나 서울시민에게는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 뿐이었다.
상경 집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서울시민의 싸늘한 반응에 온도 차이를 실감하긴 했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고한 의지를 다졌고, 전 국민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한낱 촌구석의 필부(匹夫)였던 이들이 이제 '국토 균형발전의 전도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신정연휴에는 열차승객들에게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필요한 것은 보일러가 아니라 행정수도입니다"라고 적힌 홍보물을 나눠주면서 행정수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설 명절에는 경부고속도로 천안, 유성 나들목에서 귀성객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2005년 3월 초 후속대책안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 확정되는 순간까지 주민들의 발로뛰는 노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이러한 고통과 갈등의 과정은 신행정수도 예정지역으로 알려진 그 순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실행의지에 대한 불안,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들 간의 반목까지 겹치면서 연기•공주지역은 '아우성'의 근원지가 되었다.
그러나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위헌 결정을 계기로 지역주민들은 '개안(開眼)'의 체험을 했다.
국토 균형발전이 무엇이며 행정수도의 의미는 무엇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뜻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그 뜻을 공유하는 이들과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5개월의 소중한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