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3. 뜻은 하나로, 고통은 반으로 

행정수도건설의 지속추진을 요구하는 충청권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지방의회 등이 하나로 뭉쳤다.

충청권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여 더욱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면서 다양한 집회를 통해 500만 충청도민의 뚜렷한 주장을 세상에 알렸다.

2004년 11월 22일, 코 끝을 찡하게 하는 추위에도 1만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신행정수도 사수 2차 연기군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은 위헌 결정 이후 집회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날로, 헌법재판소와 한나라당을 비롯하여 행정수도 반대여론을 주도해 온 수도권 신문사에 대한 규탄에 이어 신행정수도건설의 중단 없는 추진을 촉구했다.

황순덕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을 통해 이미 국민적 동의를 얻은 문제를 발목 잡아 주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했다"면서 "대통령과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기봉 연기군수는 "신행정수도건설이 중단되고 난 뒤 밥맛을 잃을 정도로 연기군민들이 상심해 있다"면서 "필요할 때 사탕주고 필요 없을 때 독약을 주는 정치권을 믿을 수 없다"며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연기군비대위는 이날 투쟁결의문에서 "한 달 동안 지역민들은 피 끓는 분노와 아우성으로 달려왔으며, 이 행진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며 "행정수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원안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결집을 다지기 위해 "신행정수도를 살리자!" "대한민국은 하나! 신행정수도 사수!"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를 나눠주면서 다음에 열릴 상경투쟁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궐기대회가 진행될수록 농민들의 분노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대규모로 치러지는 대회인 만큼 행사장 주변에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12개 중대 1,300여 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되었는데, 일부 농민들은 달걀을 투척하며 일부 중앙언론의 왜곡된 보도를 맹비난했다.

그 사이 연기군남면대책위원회 강선호 씨가 할복을 시도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지인들에 의해 재빨리 저지됐다.

다행히도 충남 논산 출신의 가수 배일호 씨가 궐기대회장을 찾아와 지역 주민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러주어 다소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배일호 씨는 "신행정수도건설 중단으로 연기지역 주민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면서 "날씨도 추운데 노인분이 많이 참석한 것을 보니 목이 매인다"고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그런가 하면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서 조선일보 지국을 운영하던 이종복 씨는 조선일보 현판을 떼어내어 트럭에 매달고 조치원역까지 끌고 왔다.

그는 "천도 사기에 앞장선 조선일보 절독하자!"고 외친 후 조선일보 현판을 바닥에 끌어내려 불을 붙였다.

연기군민들의 분노처럼 조선일보 현판은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다.

이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절독선언을 한 이기봉 연기군수는 "일부 정치권이 제시한 행정타운 등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에겐 신행정수도 밖에 없으며 도둑맞은 청와대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날을 '행정수도 국민의 날'로 선포하고, "행정수도건설은 충청도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 국민 전체가 골고루 잘 살자는 국가의 백년대계다"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조규선 서산시장은 "신행정수도건설은 균형발전을 통한 국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며 "충남도민이 함께 국가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자"고 말했다.

또 오시덕 국회의원이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려고 하자 "공약을 못 지키는 국회의원은 연설을 할 자격이 없다"며 비난이 쏟아져 행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는 집회 폐회식에서 '가자! 서울로! 12월 4일 총 상경 총 투쟁!'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보여주며, 연기군민의 단결 동참을 촉구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인 '신해정수도 사수 1만 연기군민 총궐기대회'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신행정수도건설 중단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연기군민이 행사를 주도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행사를 주관한 단체는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상임대표 황순덕)>로, 이장단을 비롯하여 주민자치위원회, 노인회에 이르기까지 연기군 내 여러 시민단체가 결집한 단체였다.

특히 신행정수도 건설사업 중단으로 직격탄을 맞은 남면의 경우 행정수도 이전 반대와 찬성으로 갈라졌던 민심이 하나로 집결되는 변화를 보였다.

충청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각계각층이 동참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연기군민을 중심으로 공주시와 충청남도, 대전시, 충청북도 단체가 동참했으며,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열망하는 각 지역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굉주대 이민원 교수와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등은 연설을 통해 충청도민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집회가 거듭될수록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는 강도 높은 투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대전•충남•충북의 제반 세력을 하나로 묶는 조직이 구성되고 있었다.

충남에서는 연기 집회일인 2004년 11월 22일 신행정수도 사수 범충남연대가 출범했고, 같은 날 대전에서도 신행정수도 지속추진을 위한 범시민연대 결성 간담회가 열렸다.

이들 단체는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범충청권협의회로 통합할 것을 예고했고, 기존의 시민단체는 물론 3개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지방의회, 정치•교육•언론•대학•의료계 단체가 대거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충청권 조직의 결성을 예고했다.

범충청권협의회는 신행정수도건설을 쟁취하기 위해 전국 대상으로 1,000만명 서명운동, 상경집회, 전국민 대상 홍보전, 성금모금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연기군 집회는 내용면에서 강력한 투쟁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한 행사였다.

특히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투쟁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충청권 단일조직 출범에 가속도를 붙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으며, 촛불문화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가 1,2차 궐기대회를 통해 분석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충청권 달래기 차원의 대책 발표와 수도권 반대 여론조성에 주력하면서 신행정수도 사수운동을 충청권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충청권 의원과 수도권 의원의 상반된 입장을 고려할 때 강력한 단일안이 만들어지지 못할 것으로 전망, 신행정수도건설 원안을 추진하는 안건이 당론으로 채택되도록 범국민연대가 충청권 의원들을 강하게 압박하기로 했다.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4일에 열릴 상경집회에서 신행정수도 지속추진을 위한 범국민연대 결성을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에 공식적으로 제안하기로 했다.

2004년 11월 25일, 연기군민 궐기대회로 뜨거웠던 조치원역 광장에는 또다시 400여 명이 모여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는 "신행정수도건설이 다시 추진되는 날까지 군민들의 힘을 모아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집회를 열겠다"며 투쟁을 선언했다.

특히 이날 황순덕 상임대표와 이진희 기획위원장은 대회장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선언했다.

이진희 기획위원장은 "정부나 여야 정치권에서 행정수도 지속추진을 명확히 약속할 때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을 할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밝히고 조치원역 광장에 천막을 쳤다.

단식투쟁현장을 지켜보는 주민들도 마음이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쌀쌀한 날씨에 아스팔트 바닥에서 단식과 노숙을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왜 이 사람들이 이런 극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 책임 있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신행정수도 사수 범충남연대 소속 사회단체들은 릴레이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하고, 바르게살기충남협의회 회원 200여 명도 집회에 참가하여 연기군민들에게 힘을 보탰다.

부모와 함께 나온 어린이들도 촛불집회에 참석해 작은 힘을 보태주었다.

단식단의 투쟁선포식이 끝난 뒤에는 노래 배우기와 자유발언이 이어지면서 촛불집회에서 촛불문화제로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었다.

자유발언에서 연기군 일원을 운행하는 한 노선버스 운전자는 "15일이 봉급날인데 매번 월급을 말일에 받고 있다. 산골짜기 수십 킬로를 달려도 평일에 버스 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 연기군이다.

말로만 지방 균형발전을 이야기하지 말라"며 연기군민과 기업, 주민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자리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조치원읍에 산다고 밝힌 한 주민도 "한나라당과 조선, 동아일보가 국민의 권리를 빼앗아 갔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줄 아는 충청인이 되자"며 충청인과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했다.

논산에서 지지 방문을 한 바르게살기운동 충남연대 윤진수 씨는 "장기전을 준비하여 끝까지 투쟁하자. 충남도 내 각급 사회단체들이 매일 저녁 지지 방문을 하겠다"며 응원을 보냈다.

촛불문화제가 끝난 새벽, 초겨울을 재촉하는 찬비가 조치원역 광장의 단식천막을 적시기 시작했다.

추위가 더 해질수록 단식자들의 입가에서는 뜨거운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슴 속에 뜨겁게 들끓는 분노가 입김을 통해 승화되는 것 같았다.

천막 2동을 설치한 단식 농성장에는 투쟁 성금이 모였고, 격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 각지의 여론 및 지인과 지지 방문자들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단식 농성장은 뜨거운 토론장이 되기도 했다.

11월 30일로 단식투쟁 6일째를 맞았고, 그런 와중에도 이들은 매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행정수도건설을 위한 염원과 당위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촛불집회가 끝난 뒤에도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는 중요한 사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저녁에 촛불집회가 시작되면 단식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주민들의 연설이 이어졌다.

2004년 12월 4일, 드디어 서울 종묘공원에 5,000여 명의 집회자들이 모인 가운데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연기•공주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서천, 서산, 나주시, 자치분권연대 등 전국에서 집결한 이날, 단식투쟁 중이던 황순덕 공동대표와 이진희 기획위원장을 비롯하여 이기봉 연기군수, 신정은 나주시장, 조규선 서산시장, 나소열 서천군수 등이 연단에 올랐다.

궐기대회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종묘공원에서 종각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면서 '서울시민에게 드리는 호소문' 전단지를 나눠 주었다.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대한 연기•공주 지역주민들의 투쟁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다.

대규모 집회가 거듭될수록 단식농성과 대규모 상경투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헌법재판소와 한나라당에 대한 규탄과 정부와 여당에 대한 압박을 병행해 나갔다.

특히 "모든 행정기관의 충청권 이전은 부적합하다"고 한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의 발언 직후, 충청도 지역 주민들은 대정부 투쟁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시위 속에서도 신행정수도건설 사수와 지속추진을 염원하는 성금이 모아졌다.

개인에서부터 기관, 단체, 기업,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응원이 이어졌고, 지역민들 또한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성금모금활동에 동참했다.

향토기업인 일미농산의 오영철 대표는 3,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쾌척했고, 현대주류의 박성대 대표는 500만원, 주식회사 동양식품 임태기 대표와 연기군 농협조합장협의회에서도 각각 300만원, 시장번영회와 재경향우회 등에서도 성금을 보냈다.

일부 주민들은 성금대신 필요한 물품을 제공했다. 이러한 투쟁성금모금현황은 인터넷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하게 공개되었다.

단식투쟁 10일이 지나갈 무렵, 황순덕 공동대표와 이진희 기획위원장이 탈진 상태에 빠지자 병원으로 실려갔다.

단식투쟁 중에도 집회 참여를 강행한 것이 탈진의 원인이었다. 이들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단식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주변의 만류로 중단됐다.

2004년 11월 25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점차 촛불문화제로 이어졌고, 새해를 맞이하여 50여 일을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맞으면서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전국홍보활동은 계속되었다.

12월 24일, 충청남도 연기군의회 의원들과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열차 홍보투어에 나선 것이었다.

유환준 충청남도의회 의원, 황순덕 위원장, 그리고 연기군의회 의원 등 10여 명의 홍보단은 오전 9시 30분, 조치원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본격적인 열차홍보활동에 돌입했다.

먼저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호에 탑승, 신행정수도건설의 당위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필요한 것은 보일러가 아니라 행정수도입니다."

열차에 탄 승객들에게 나눠준 홍보물에는 짧지만 강한 문구가 실려 있었다.

신행정수도건설이 충청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중요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물론 이들의 홍보활동에 부담을 느껴 짐짓 헛 잠을 청하는 승객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승객은 홍보물 내용을 꼼꼼하게 읽으며 신행정수도 사수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홍보단은 대전으로 올라오는 동안에도 열차 승객들의 질문에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고, 대전역에서는 다시 서울행 KTX로 갈아타서 홍보활동을 이어갔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서울역 광장에서 2시간 남짓 홍보활동을 벌인 후 오후 늦게 조치원역으로 돌아왔다.

2005년 1월 24일,  신행정수도 사수 연기군비상대책위원화는 '연기홍보단'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나갔으며, 1월 27일 대학로에서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범국민대회를 다시 열었다.

이날 행사는 각계각층의 충청인 3만여 명이 모인, 신행정수도 사수 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가 창립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행사였다.

행정수도 지속추진을 요구하며 동전 150만개 모으기를 추진해온 위원들은 그동안 모은 동전의 일부를 쏟아 붓는 퍼포먼스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대학로에서부터 종묘공원까지 행진하며 서울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와같은 노력으로써 그동안 행정수도건설 이슈에 무관심했던 타지역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접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