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0일, 추위에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조치원역 광장에는 또다시 500여명의 지역주민들이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었다.
정부의 세종특별자치시 백지화어 맞서 원안사수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촛불문화제가 꼭 100일이 되던 날이었다.
100일 동안 크고 작은 사고 없이 평화로운 시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시위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만들고, 분르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하기보다 단결된 메시지를 평화적으로 전하는 시위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조치원역의 촛불문화제는 연기지역 50여 단체가 순번을 정해서 촛불문화제를 이끌었고, 매회 150여 명 안팎의 인원이 참여하여 누적 참기자가 2만여 명을 넘어섰다.
1개읍 1개면 대표자들과 200여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촛불을 든 셈이었다.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발표된 결의사는 90여 건, 삭발자는 107명, 그리고 422명이 89일째 릴레이 단식을 하며 세종특별자치시 원안사수를 위한 투쟁을 함께 했다.
이로써 조치원역 광장은 '행정도시 사수'의 성지가 되었고, 충청도민의 뜻을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든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2010년 1월 27일, 행정도시 무산저지 충북비상대책위원회는 행정도시 원안사수 횃불봉화제를 열고 "엄연히 살아 있는 세종시법을 제쳐버리고 수정안 입법예고를 밀어붙이며 협박 농락하더니 이제는 선전포고에 이르렀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개최된 횃불봉화제는 충청권 3개 지역에서 충청인들이 행정도시 원안사수를 기원하고 투쟁의지를 결의하는 한편 충청인들의 일치단결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오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빗줄기와 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행정도시 원안사수 기원제를 지내고 함께 횃불을 올렸다.
대전지역은 계족산, 청주지역은 것대산, 연기지역은 조치원역에서 촛불문화제와 함께 병행하여 개최되었다.
2010년 2월 1일,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원회와 연기군이장단협의회의 주최로 연기군청에서 수정안을 전면 거부하는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또한 같은 날, 충청남도 내 종교계와 지식인 등은 자유선진당 충남도당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을 위한 충청지식인 1,000명 선언문'을 발표하며 뜻을 모았다.
그러나 2월 12일, 유한식 연기군수가 직권 남용과 정치운동 금지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었다.
군수가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 반대 단체에만 보조금을 지원했다는 사유였다.
이로 인해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원회에 지급되던 특정신업 유치활동비가 중단되었다.
이후에도 행정도시 원안사수를 위한 크고 작은 시위들은 계속됐다.
행정도시사수범공주시민대책위원회(공동대표 정만수, 이충렬)는 정운찬 총리의 지역방문과 관련해 1시간여 동안 피켓 침묵시위를 펼쳤고, 공주시청 앞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안을 국회가 거부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행정도시 무산음모저지 충청권비상대책위원회(상임대표 이상선)는 다전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운찬 총리,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정진철 행정도시건설청장 및 서종대 차장 등을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신행정도시건설특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달랐지만, 그 목소리 안에 담긴 뜻은 오직 하나였다.
행정도시 원안사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은 6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최종 부결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역 주민들과 원안추진을 촉구하던 시민단체들은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 폐기를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세종특별자치시 문제를 끝까지 철회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비난했다.
6월 2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이 즉각 폐기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국회로 떠넘겼고. 6월 22일 국회해양위원회에서 부결되었음에도 본회의에 부의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