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저널•브라스밴드 메카

브라스밴드의 메카, 연기군의 음악인들
      칼럼 / 소설가 김제영

브라스 밴드의 메카, 연기군의 음악인들
세종아리랑을 우리 모두 합창합시다.

2010년 07월 16일 (금) 14:47:30 소설가 김제영

부활절 칸타타 <상사디여 주 사셨네>는 서양음악의 바탕에 한국적 정서의 음악언어를 조화시키려는 시도의 작품입니다. 교회 찬양대를 지휘하면서 한국적인 칸타타의 부족이 늘 아쉬웠습니다.  …후략…   

도서출판 ‘아홉거리미디어윌’이 발간한 박상서의 성가집 <상사디여 주 사셨네> 첫 장에 기재된 작곡자의 말에서 발췌한 머리 부분이다.  

  ▲ 박상서 작곡가•지휘자 (연기민예총 지부장)

본 작곡집에 수록된 열편의 합창곡 중에서 다섯 편은 우리 전래의 소리꾼과 판소리의 삽입으로 기독교 성가의 한국적 토양화를 꾀한 작품이다. 판소리와 소리꾼의 창은 마치 예수수난의 오페라 무대에서 통한의 아리아를 듣는 듯 절절한 아픔이 가슴을 치는 뭉클한 감동의 작품이다. 

이미 40여 교회에서 연주되고, 대전 CBS가 작곡가의 해설로 방영(2008.4.5)을 했고 한국 유수의 작곡가 김삼곤 교수(서해대, 중앙대대학원출강)가 이끄는 홀리 크로스 합창단이 김삼곤 교수의 지휘로 칸타타 <상사디여 주 사셨네>의 순회공연을 했다. 

6월 20일 일요일 오후. 간신히 연락이 된 작곡가 박상서가 자료를 갖고 내게 달려왔다. 소파에 앉자마자 그는 “부활절 칸타타 보다 선생님께서 꼭 써주셔야 할 주요 사항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총보를 탁자에 내 놓는다. 

세종 아리랑 박상서 작사, 작곡 Score 일별하고 나는 작곡가를 바라본다. “선생님, 기만으로 일관해온 사기꾼들이 세종시 문제를 또 국회로 끌고 가고 있지 않습니까. 금년이 2010년입니다. 이천열명의 합창단이 세종시 입주예정 첫 마을 공사 현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해 세종시에 대한 국민의 불길 같은 여망을 뿜어내는 것입니다.”
 
조치원역 광장을 가득 메운 1만5천명 집회

세종시 공간에 울려 퍼질 이천열명의 웅장한 합창의 울림을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한긴 소리꾼과 판소리를 종교의 경지로 끌어올린 창의력의 귀재 박상서가 아닌가. 한국에서 메시아의 헨델이나 제9심포니 합창의 베토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 “박선생, 기발해. 그런데 경비며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하지?”

“선생님 뉴타운 아파트 건설로 국민을 끌어 모아 장사꾼의 도시로 흥청거리게 하여 이조의 유적을 파괴함을 100년 대계라고 뻗대며 세종도시 건설 수정안을 밀고나가려는 무식꾼들이 아니면 지혜가 모아집니다. 

충남에서 활동하는 충남도립, 천안시립 관현악단이 있습니다. 합창단도 있습니다. 어차피 국가 예산이 집행되는 도립이나 시립교향악단은 각 지역마다 순회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 기회를 잡으면 됩니다. 제가 만일 유명 음악인이라면 당연히 작곡료가 지불되겠지요. 그런 것 바라지 않습니다. 충남북도민이 하나로 뭉쳐 싸우는데 저는 제 전문분야의 음악으로 투쟁에 참가 하는 것입니다.”

“난 안희정 도지사를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의 지적안목과 형형한 사고의 논리성을 믿어요. 충남북 관리들이 박상서 선생의 앙가주망적 예술 활동의 정열에 동참해주리라 확신해요. 작품의 효율성을 떠나서 세종아리랑은 연기군이 낳은 위대한 작품이니까요.”

작곡가 박상서는 현재 충남 병천중학교 음악교사이고 사단법인 ⌜한국민족 예술인 총연합 연기지부⌟ 지부장이기도하다. 

예술을 통한 인성의 숙성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자력의 창조적 의지를 북돋아 줌으로 교육이 지향할 바라고 음악 교육자로서의 신념을 갖고 있는 박상서가 타성화한 비교육적 요인들로 독소가 만연한 교육계 쇄신에 교육자의 참신한 양심이 모아지고 있는 교원노조의 태동에 어찌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교원노조 스승이다.

최근 민예총 연기지부의 행사 팸플릿에 기재된 그의 인사말 중에서 몇 대목 전재한다.

…전략…하루하루를 살기가 두려운 것은 내일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나 혼자가 아니고 진리가 승리할거라고 믿는 함께하는 우리가 있기에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후략… 
(제2회 연기민음협  정기음악회의 인사말 중) 

…전략…혼자 열 걸음보다는 여럿이 한걸음씩 전진해봅시다. 물결치는 대로 떠내려가는  죽은 물고기가 아니라 힘들지만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동적 삶을 우리함께 살아봅시다. …후략… 
(민예총 연기지부 창립대회의 인사말 중)

예술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리더의 공동체의지가 확고하였기에 세종시 원안 사수  투쟁의 중심에 민족음악협회 연기지부가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 행정도시 정상건설 기원 송년음악회’를 감동적으로 이끈 황치환 민음협지부장

       ▲ 행정도시정상건설기원 송년음악회

조치원역광장에 집결한 1000여명 군중의 분노는 드럼통장작난로에서 치솟는 불길보다 거세다. 

흥분으로 술렁이는 광장의 열기를 다독이며 사회자는 무대의 순서를 진행했다. 

단식, 삭발, 서울원정 궐기대회 등 수년간에 걸친 충청남북도민들은 지치고 쓰러지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MB정부와의 지루한 투쟁을 지속했다.

그 다양한 투쟁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기록을 감상하고 가수 손병희의 노래와 최석종의 품바 공연이 2009년12월31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이어진 조치원역 촛불광장의 여운이 짙었음은 사회자에 대한 나의 지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 거지만도 못하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세상을 풍자한 각설이공연(품바 최석종)

        ▲ 행정도시정상건설기원 송년음악회

그동안 나는 학술, 언론단체, 예술단체. 정치모임, 온갖 세미나와 포럼 등에서 행사를 이끌어가는 사회자의 모습을 보아왔다. 

하지만 특별히 각인된 인상은 없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만을 기웃거리는 돌중처럼 나는 사회자의 얼굴을 보려고 앉은 자리에서 별짓을 다하여 고개를 움직였지만 군중에 가려져 사회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음색은 밝으면서도 경박하지 않았고 음질은 윤택하다. 침착하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음성의 톤(Tone)은 친근감이 물씬 풍긴다.

“그러니 달인이 되실 만도 하네요. 민예총 지부장은 작곡가이고 민음협 지부장은 관악(트럼펫)주자이고 흥미가 있어요. 황 선생이 트럼펫을 불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조치원중학교 1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점심시간만 되면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거에요. 

친구들에게 물으니 보육원에서 싸주는 도시락이 창피해서 싸오지 않는다는 거에요. 

어머니께 말씀드렸지요. 어머니께서는 도시락을 두개씩 싸주셨어요. 그 친구와는 지금까지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트럼본을 불었습니다. 제게 영향을 준 친구지요. 그 친구는 한양대음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훌륭한 음악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악기나 건반악기와는 달리 관악기는 가난한 농촌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악기였지요.” 

 ▲ 조치원중학교 트럼펫 삼총사(황치환 황규섭 김봉배)

     ▲ 보문고등학교 브라스밴드(트럼펫 주자)

 ▲ 육군군악대(육군사관학교 교정) / 임헌창 김쌍봉 황치환

오늘까지 트럼펫연주자로 활동할 수 있는 저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중학시절(1979년)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대상(모짜르트의 Concert Rondo)을 차지하고 3년 특별장학생으로 대전 보문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대전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음악활동과 봉사활동 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가정형편상 진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담임과 음악선생님이 타이르고 권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3년 6월 입대를 하고서야 군악대에 보직을 받고 음악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일화가 있다면?”

“당시에는 피아노반주자를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콩쿠르를 앞두고 선생님의 입반주로 연습을 하곤 했어요. 

입반주에 맞춰 연주를 하는데 틀릴 때마다 선생님께서 드럼 스틱으로 매를 치셨어요. 한동안 때리지를 않으시는 거예요. 이제 살았구나했지요. 연습이 잘된 모양이구나 했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176군데가 틀렸다. 스틱으로 한대한대 때리다 보면 손이 못 견딜 테니까 스틱을 10개로 묶어 한대에 10대 맞은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며 그렇게 매를 때리셨어요. 동아콩쿠르에서 대상을 탄 그 순간 선생님께서 나를 껴안고 우셨습니다.”

가슴이 뭉클했다. 오늘의 교육계라면 당장 내쫓길 선생이었겠구나 생각을 하니 유교적 도덕개념이 붕괴되고 있는 작금의 학교 풍토가 씁쓸하기만 하다.

 ▲ 김용성 (연기민음협 사무국장, 연기민예총 감사)

김용성 사무국장도 자기소개를 좀 해봐요.” 

“현재는 색소폰 앙상블 활동을 하고 있고요 10인조 밴드에서 색소폰 주자로 한 몫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에서 문화공연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고요.”

“김 선생 역시 조치원중학교 출신이겠지요?”

“네. 조치원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브라스밴드에 가입했습니다. 그때부터 꽤 열심히 했습니다. 

충남북 콩쿠르 개인 입상, 중등부 및 단체 입상.

 그러나 개인형편 상 고교 3년에 중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였지요. 선생님들이 말리셨지만 제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제 자신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후배들이 저를 잡아주었습니다. 음악활동을 하게끔 용기를 주었지요.” 

“음악콩쿠르에서 입상할 정도라면 개인레슨을 받지 않았나요?”

“오늘과 같은 환경이라면 우리는 감히 음악이라는 ‘음’자 곁에도 못 갔을 겁니다. 선배들이 레슨비는커녕 저희들에게 음식을 사줘가며 악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받으면 저희들에게 달려와 격려를 해주었고 명절이면 고향을 찾은 선배들이 가난한 후배들에게 악기를 들게 해줬지요.”

“그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대충 소개해줄 수 있어요?”

“KBS교향악단 바순주자 윤상원, 수원시향 트럼펫주자 박성수, KBS관현악단 색소폰 주자 신광식 등이 대표적 음악가입니다.”

“황치환 선생은 어떠세요?”

“저 역시 선배들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지도 코치로는 박종완 선배가 있었는데 김인배 악단에서 활동하다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가진 트럼펫주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지요. 전국에 있는 악단과 중고등학교 브라스밴드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우리 조치원중학교 출신입니다.”

“그 이유를 좀 설명 해봐요. 어떻게 조치원중학교에서 그리도 많은 관악지도자를 배출했는지.”

“1951년 개교와 동시에 미국 선교사가 관악기 5대를 선물한 것이 기반이 되었지요. 우리 농촌학생들은 거의가 다 가난했으니 악기가 신기했겠지요. 그렇게 해서 관악기주자가 태어났고 전국의 콩쿠르에 입상하게 되면서 학교, 교육청, 유지들이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단복도 맞춰주고, 보면대도 사주고 상금도 타고요.”

“과연 한국의 브라스밴드의 메카로서 탄탄한 기초가 다져졌군요. 기쁘고 흐뭇합니다. 황치환 민음협지부장으로서 결론을 맺어 주세요.”

“삶의 수준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문화 복지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지역에 유수한 브라스밴드가 재탄생되어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 유능한 연주자를 많이 배출시켜 그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매우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즉 연기군을 관악의 요람으로 발전시킨다면 우리 지역의 크나큰 브랜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글은 음악저널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