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드• 여정의 시작

3. 동상이몽의 쉼표


신행정수도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 입지 선정을 놓고 까다로운 심사과정이 전개되었다.

충청도의 여러 지역이 후보지로 거론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연기와 공주지역이 최종 입지로 선정되자 해당 지역주민들은 설렘과 기쁨보다는 보상문제에 따른 대립과 갈등에 휘말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 소원이 제기되자 민심은 크게 술렁거렸다.

2004년은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고, 이로 인해 신행정수도건설도 우여곡절을 겪은 한 해였다.

무엇보다 행정수도건설의 기본이 되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공포되어 본격적으로 신행정수도건설이 시작될 무렵인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정국은 혼미해졌고 행정수도건설에 대한 불안감도 증폭되었다.

그러나 탄핵 역풍으로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하여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였고,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함으로써 행정수도건설은 다시금 활력을 받게 되었다.

2004년 5월 21일, 드디어 행정수도건설의 주요사항을 심의 결정하는 최고기구로서 대통령 직속의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였다.

위원회는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당연직인 정부 주요 10개 부처 장관(재정경제부, 교육인적자원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농림부, 환경부,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 및 국회사무총장(국회대표), 법원행정처장(법원대표), 그리고 민간 전문위원 16명(강용식, 김영평, 이규방, 서의택, 이상은, 임승달, 하인봉, 최병선, 조재육, 양병이, 박헬렌주연, 권원용, 황희연, 이호철, 이주영, 신환철)으로 구성되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위헌판결로 해산되기 전까지 8회에 걸친 전체회의를 통해 주요 행정기관의 이전계획, 신행정수도건설 기본계획, 행정수도 입지 등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주요사항을 심의 확정하였다.

2004년 6월 3일,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2차 회의)에서 '행정수도 후보지 선정기준과 평가기준'을 확정 발표하자, 충청권에서는 신행정수도가 어느 지역에 들어서게 될지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행정수도가 건설되면 건설경기가 살아나서 내수 경기가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경기 부양책일 수도 있는데•••."

"우리 지역이 선정되면 국회도 오고, 유명 방송사도 오고, 각국의 대사관도 올 수 있는 거잖아?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 지역이 꼭 선정되어야 해."

"대전에 행정수도가 건설되는 건 반대야. 집 값도 올라가고, 공기도 안좋아질 게 뻔하잖아."

신행정수도건설 입지선정을 놓고 충청주민들의 의견은 분분했지만, 지역발전을 기대하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았다.


신행정수도 후보군의 발표를 앞두고 유력 후보지들이 거론되자 충청권은 들썩거렸다.

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이 공청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었던 후보지는 공주시, 장기•연기지구, 오송지구, 아산 신도시, 대전 서남부 지역 등이었다.

이들 지역은 이미 1970년대에도 임시 행정수도 후보지 대상이었고, 대규모 택지개발 계획이 추진되어 온 곳이기도 했다.

그러자 대전과 충남 공주•천안, 충북 오송은 행정수도 이전지 또는 배후 도시로 거론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갑자기 치솟았고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막상 도시 기본구상 및 입지기준 시안이 발표되었을 때 아산 신도시와 대전 서남부 지역은 후보지에서 배제되었다.

충청도가 후보지 논란으로 소란스러운 가운데 추진위원회는 건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먼저 충청권을 대상으로 현황조사를 실시하고, 2004년 6월 15일 충북 진천(덕산면)•음성(대소면•맹동면), 충남 천안(목천읍•성남•북•수신면), 충남 공주(장기면)•연기(남•금남•동면), 충남 논산(상월면)•공주(계룡면) 등 4곳을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모두 균형발전과 개발가능성, 보전 필요성 등 후보지 선정기준에 적합하면서 인구 50만명이 거주 가능한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충청권 내에서 후보지로 선정된 이유도 합목적성, 개발 가능성 , 보전 필요성의 세 가지 측면을 기준으로 삼았다.

선정된 4곳은 최적 건설지로 선정하기 위한 더욱 까다로운 세부 평가기준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추진위원회에서는 입지 선정관리 T/F팀에서 선정한 '후보지 평가기준'의 5개 기본 평가항목과 20개 세부평가 항목, 그리고 항목별 가중치를 확정하였다.

후보지 평가 기본채점 항목으로는 국가균형발전(가중치 35.95), 국내외에서의 접근성(24.01),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19.84),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조건(10.20), 도시개발비용 및 경제성(10.00) 등 65개 항목이었다.

항목마다 가중치가 있어 입지선정 시 고려되는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기본항목 5개는 세부 항목 20개로 다시 나눠 가중치를 부여하여 평가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 중에서 '국가균형발전' 항목은 전체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조건'의 경우 5개의 세부항목으로 나누었는데, 그 중에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항목이 포함되었다.

한마디로 '풍수'를 뜻하는데, 풍수의 가중치는 1.12로 도로 접근성(11.08)과 인구분산 효과(9.83) 등 20개 세부항목 중 가장 낮았다.

이처럼 풍수가 차지하는 수치적인 비중은 미미하지만 전통적인 풍수사상에 대한 국민정서와 심리적 영향관계를 고려하여 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가운데 2명의 풍수전문가(김두규 우석대 교수, 이대우 풍수조경연구소 대표)를 위촉하였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평가 심사를 기하고자 16개 시도에서 추천한 80명의 평가위원이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서울시•인천시•경기도•강원도 등 4개 시도단체가 위원 추천을 거부하여 관련학회의 추천을 받아 진행하였다.

평가위원들은 평가의 객관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처럼 외부와 격리된 곳에서 합숙생활을 하며(2003.6.21~6.26) 평가한 결과, 연기•공주 지역(88.96)을 최적안으로 선정하였다.

후보지 중 공주•논산지역은 80.37점, 천안지역은 75.02점, 진천•음성지역은 66.87점으로 평가되었으며, 기본 펑가항목 5개 분야에서 모두 연기•공주지역이 가장 높게 평가되었다.

이후 2004년 7월 12일부터 30일까지 전국 13개 도시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여 입지평가 결과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부처 및 시도 등 53개 기관의 협의를 거쳐 8월 11일 제6차 추진위원회에서 심의 확정하였다.

이렇게 행정수도건설의 가장 큰 난관인 입지선정은 원만히 이루어졌으나, 이는 세종시 건설의 기나긴 여정에서 첫 걸음을 뗀 정도였다.


이후로 주민보상 문제를 비롯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었고, 발목을 잡는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큰 난관은 2004년 4월 30일 수도이전반대국민포럼(대표 최상철 서울대 교수)이 국회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한 사건이었다.

국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공청회 등 적법한 의견 수렴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게 그 명분이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야당이 충청권 의석을 지키기 위해 법안 통과를 요구하고 원안 통과를 관철시킨 것은 국회법 취지에 위배되는 수치스런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후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으로 명칭을 바꾸고 각 언론에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활동을 펼쳤다.

참여정부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소송에도 불구하고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춘희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장도 "정부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전계획과 개발계획 수립 등 계획된 일정을 차질 없이 추진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행정수도는 통일 후에 추진하고, 그 입지는 민족통합을 상징하고 국가 경쟁력에 보탬이 되도록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해야 한다"면서 행정수도 이전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도 수도이전반대 결의대회를 갖는 등 서울시민의 반대여론을 부추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충청권 지역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발언과 서울시의회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신행정수도 대토론회'에서도 국민적 합의 여부, 입지, 이전 시기 등의 쟁점사안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2004년 7월 12일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은 헌법재판소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 소원 청구인단은 서울시의회 의원과 대학교수, 기업인, 대학생 등 169명으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기본권 침해의 내용은, 첫째 수도이전 문제는 헌법 제72조의 외교•국방•통일 등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고, 둘째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공청회 없이 진행되었으므로 헌법 제12조 제1항의 적법절차 원리에서 파생되는 청문권을 침해하였고, 셋째 예정지역을 충청권으로 미리 정한 것은 합리적 근거 없이 다른지역을 차별한 것으로 평등원칙에 위반한다는 것이었다.

충청도민과 서울시민의 민심은 서로 엇갈렸다. 신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충청권 주민들은 행정수도건설이 지연되거나 무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고, 일부 서울시민들은 서울시의회가 개최한 수도이전반대궐기대회에 참석하여 반대의견에 힘을 실었다.

신행정수도건설은 동상이몽의 길 위에 멈춰서 있었지만,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이었다.

모든 시선은 2004년 10월 21일 오후 2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에 대한 선고일에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