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3년간 주민 보상을 책임졌던 임백수 보상대책위원장의 후일담이다.
그를 비롯한 100여명의 보상대책위원들과 청년들은 순수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섰던지라 동네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든든한 배후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힘들지? 힘내!"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들의 그 한마디에 보상대책위원들은 다시 힘을 내어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보상대책위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 중의 하나는 특별법의 일부를 개정하여 주민들이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세종시 개발사업에 참여하여 생계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민생계조합을 만든 것이다.
조합에서는 2006년 3월부터 비영리법인 '장남', '전월', '영농사업단'을 조직하여 2,800세대 조합 주민들에게 철거, 벌채, 조경수목 이식, 무연고 분묘 이장, 방치된 폐공 복구작업, 경비 위생용역, 영농임대 등의 일자리를 지금까지 제공해오고 있다.
2008년부터는 큰 액수는 아니지만 창출 이익의 25퍼센트를 조합원들에게 배당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개발사업에서 주민이 보상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우는 없었다.
말이 좋아 협상이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보상내용을 결정하고 주민은 이에 반발하는 형국이었다.
주민보상대책위원회와 주민생계조합은 주민이 세종시건설이라는 국책사업에 동참한 매우 특이한 경우로, 이후 개발지에서 모범적인 벤치마킹을 하는 선례가 되었다.
철거 규모를 고려할 때 주민 보상이 1년 만에 95퍼센트 이상 이루어졌다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충남 연기군, 공주군(2개 시군, 5개면 33개리)에 거주하는 4,180가구(1만여명), 가옥 3,598동, 공장 154개, 축사와 과수원 등의 농장이 모두 철거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민보상에 몇 년이 소요될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주민 참여형의 합리적인 보상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배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
2006년대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었던 이춘희 세종시장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업 초기부터 주민보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보상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사업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으니 주민들이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단순히 법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주민들의 생계대책까지 배려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는 것이다.
행정수반의 그러한 특별 당부가 있었기에 주민이 참여하는 보상과정도 가능할 수 있었고 그 결과도 원만했다.
이와 같이 세종시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주민끼리 분열하고 반목했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 주민들은 단결의 힘을 배웠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